Three Shapes / Text 2023



<보고, 그린다> 

신승오(페리지갤러리 디렉터) 



엄유정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새삼스럽지만 ‘보고, 그린다.’는 행위를 떠올리게 된다. 회화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작업 과정인 대상을 보고 그것을 그리는 행위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 특별한 방법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이 당연한 과정은 그의 작업에서 다양한 변주를 이루어 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먼저 그가 보고 그리는 대상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아야겠다. 작업의 초기에서부터 그는 아이슬란드의 빙하, 미국 데스 밸리의 사막, 제주도의 밤 풍경, 스코틀랜드의 바위산과 숲과 같은 자연의 모습을 그렸었다. 그는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만난 자연의 풍경에 끌렸을까? 아마도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혹은 상상과는 다른 낯선 풍경이 보여주는 형상의 강한 자극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특정한 장소를 옮겨가면서 그려진 풍경들은 그 형상이 보여주는 환경적인 특성이 강조되어 표현되어 있다. 이와 함께 사람을 관찰하여 다양한 움직임의 표정을 담은 드로잉 작업과 이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작업이나 연작에서 시작하여 전시로 이어지는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풍경이 아닌 개별적인 대상을 깊게 관찰하는 작업도 볼 수 있다. 이는 대상과의 거리가 밀접해지면서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방향에서 보면서 나타나는 다른 형태들을 그리거나 아주 세밀한 시선을 통해 자기 눈(目)에 새롭게 드러나는 것을 그리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의 대상을 그리는 그는 선, 면, 색을 상황에 맞게 여러 조합으로 바꾸어 가면서 많은 드로잉과 회화를 쌓아 나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이 본 것에 대한 감각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이 아니라 객관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온전히 그 대상에서 발견되는 것의 다름, 다시 말해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게 되는 형상에서 발견되는 어떤 모양을 기록해 나가는 것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드로잉이나 회화가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시 활용하고 있다. 먼저 이들은 그 자체로 완성된 대상이 있다. 이렇게 그려진 대상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이를 다시 보면서 새롭게 얻어진 것을 덧붙이거나 수정을 가한다. 또한 그가 그린 것을 보면서 어떤 부분이 가진 요소를 인식하게 되면, 이를 가져와 새롭게 그린다. 그리고 동일한 장면을 여러 번 그리기도 하며, 전혀 다른 것을 그리기도 한다. 물론 큰 그림으로 확장하기 위한 소재로도 연결된다. 이에 따라 그의 그림은 자연스럽게 전체가 부분으로 다시 부분이 전체로 부분이 또 다른 부분으로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데로 변화하며, 이 과정은 수없이 반복된다. 이와같이 특별한 것 없는 방식으로 그가 보고 그리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모양으로 나타난다. 


 이제는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Three Shapes》 작업을 살펴보자. 서로 다른 장소에서 그린 수풀, 눈, 바위의 풍경이다. 일단 뭔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대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이 작업 앞에서 우린 무엇을 보고 있는가? 수풀은 여러 선으로 그려져 다양한 모습을 다채롭게 드러낸다. 여기까지는 문제 없이 우리의 눈(目)이 움직인다. 눈(雪)은 나무 위에 쌓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온전한 형태로 나무 위를 덮으면서 서로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하지만 혼재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눈인지 잎인지 바위인지 구분되지 않게 나타나기도 한다. 바위는 위로 솟아오르려 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중력에 의해 눌러져 있기도 하다. 또 다른 것은 서로가 엉켜 있어 단순하게 구분되어 있고, 어떤 것은 하나하나의 덩어리가 두드러져 서로의 존재감에 의해 일시적으로 기대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두는 그가 어떤 풍경을 보면서 발견한 모양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 작업은 대부분 수평과 수직으로 움직이는 붓질로 인해 선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 어떤 선은 외부의 경계를 표현하게 되어 그가 그려내는 모양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은 전체와 개별의 모양을 이루고 있는 붓질의 움직임과 선을 따라 직선으로 움직인다. 이는 아마도 그가 본 풍경이 이전의 곡선적인 식물의 형태와는 다른 나무와 바위가 가진 직선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은 수풀인지 눈인지 바위인지 구분하는 것이 이 그림을 보는 데 중요한 요소일까? 오히려 지금의 작업은 구체적인 대상의 인식보다는 작가가 보고 그리고 있는 형상을 따라가며 드러나는 그 모양과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그의 눈(目)과 그것을 보는 나의 눈(目)이 이어지는 눈맞춤이 필요해 보인다. 다시 눈을 맞추기 위해 그 모양을 보러 가보자. 그가 그리는 모양들은 각자의 경계를 맞닿아 있기도 하고 서로에게 겹쳐 엉키기도 하며 수직으로 혹은 사선으로 뻗어 나가기도 하며 수평으로 눕기도 한다. 이를 통해 완전히 다른 성질과 모양을 가진 대상은 복잡하게도 단순하게도 입체적으로도 평면적으로도 나타난다. 그리고 작업이 점점 진행되어 나가면서 서로에게 침투하며 교차하며, 눈 덮인 나무는 돌산이 되고 돌산은 숲이 되고, 숲은 다시 나무가 되는 서로가 닮아가는 풍경이 되어간다. 


 그렇다면 이번 작업에서 나타나는 모양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 단서는 새로운 곳에서 그린 풍경과 이미 이전에 다른 곳에서 그렸던 그림이 같은 장소처럼 느껴졌다는 작가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무엇이 잘못된 인식의 오류이기보다는 이제는 어떤 특별한 장소는 작가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따라서 최근의 작업에서 오히려 강조되는 것은 그의 그리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쌓아 나가면서 이루어 내는 시간성이다. 그가 꾸준히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는 드로잉과 같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발견하게 되는 것은 순간적으로 접촉하고 사라지고, 다시 접촉하고 사라지며, 어떤 경계와 간격을 인식하게 되는 복잡한 과정이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그리는 행위는 그것이 그려지는 비가시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명확하게 어떤 모양을 포착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그에게 본다는 것은 사물의 표면에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이며 접촉하는 시간이다. 물론 이러한 관찰의 과정과 시간은 그 대상이 가진 심연의 본질을 찾기 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가 작업을 통해 보고 있는 것은 자기 눈을 통해 발견되는 그 대상이 가진 외연의 모양일 뿐이다. 이처럼 하나하나의 존재는 그의 작업에서처럼 분리된 독립적인 모양을 가지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모양들은 세상 전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구조인 동시에 수평적으로 그 안에 독립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보고 그리기 위해 모양들과 접촉하는 그 순간의 시간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작가가 바라본 자연의 풍경에서 옮겨진 고요한 객체인 하나의 모양에서 시작되어 그 이후에 다시 새롭게 동요하게 되는 작가의 시선에 의해 시시각각 다른 모양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가 그리는 모양은 어제, 오늘, 내일의 존재가 아니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순차적인 시간이 아니라 눈에 의해 보이고 변형되는 그림 그 자체로 새로운 시간을 형성해 나간다. 결국 이런 시간성은 우리에게 고유한 것과 특별한 것, 즉각적인 것과 중계된 것,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 사이의 접촉에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가 자연의 대상에서 발견하는 모양은 우발적인 표면에 불과하므로, 작가가 반복적으로 그리는 행위를 통해 필연적으로 계속해서 균열을 발생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작업의 과정이 된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서 모양을 본다는 것은 이와 같은 작가의 시간과 우리 각자의 시간을 연결해 공감하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여기서 글의 시작으로 돌아와 ‘보고, 그린다.’는 이야기를 마무리해 보자. 《Three Shapes》을 보면 엄유정은 자연의 풍경을 관찰하여 그리지만 그것이 가진 초월적인 차원과 경험적인 감각에만 기대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풍경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간에 집중하게 되면서 세상을 인식하는 새로운 창을 열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대상을 눈으로 보면서 꼼꼼히 보려 하지만, 여전히 그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그 밖에 머물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작가가 생각하는 형상의 본질은 그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과 접촉하는 외부에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자연의 형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모양을 순간순간 그리는 자신을 그 시간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특정한 형상에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획득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는 그저 시시각각 수도 없이 나타나는 형상을 따라가면서, 조화로우면서도 모호함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의 모양을 꾸준히 보고 또 보며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작가가 결말을 유보하는 끝나지 않는 시간적 순환이라는 작업 방식으로 찾아내는 모양이야말로 이러한 과정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타나는 대상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드러내는 표현 하나하나로 인해 그 충만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듯 그에게 ‘보고, 그리다.’라는 것은 대상을 아름답게 표현하거나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경험하는 추상적인 감각을 인식하는 자신만의 수행적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Seeing and Drawing” 


The paintings of Eom Yujeong remind us of the act of “seeing and drawing.” Seeing an object and drawing it, the primary work process of painting is so natural that it is not regarded as a unique method and is easily overlooked. But it creates variations on this obvious process in her work, and they show us something. Then, first, let us take a look at what the artist sees and draws. From the beginning of her practice, Eom painted scenes from nature, such as the glaciers of Iceland, the deserts of Death Valley in the United States, the night scenes of Jeju Island, and the rocky mountains and forests of Scotland. Why was she drawn to the natural landscapes she encountered in such disparate locations? Perhaps it was because of the strong stimulus of shapes in landscapes that were unfamiliar to her or different from her imagination. As such, the landscapes drawn in these specific locations are represented with an emphasis on the environmental qualities of the shapes. Along with this, we can see drawings of various facial expressions by observing people, the animation based on it, as well as profound observations of individual objects rather than landscapes, as seen from the series “Araucaria” to the exhibition “Feuilles.” It is to draw different forms that appear while looking at a single object from various directions as the distance to the object becomes closer, or to depict something newly revealed to one’s eyes through a very detailed gaze. In this way of drawing natural objects, she accumulates many drawings and paintings, changing lines, planes, and colours in different combinations to suit the context. It is not simply a sensory and emotional representation of what one sees but rather a record of the differences found in the object based solely on objective observation or, in other words, the shapes found in the figure that are revealed over time. It doesn't mean that these drawings or paintings stop as completed works of art. The artist repurposes her works in several ways. First, they have an object that is complete as it is. The drawn object doesn't end there; the artist looks at it again and adds or modifies what they've newly obtained. And when she sees something she’s drawn and recognises a particular element, she takes it and redraws it. Also, she drew the same scene multiple times or something completely different. Of course, it also leads to material for scaling up to bigger works. As a result, her paintings naturally transform from whole to part, part to whole, and part to another part, wherever the artist's gaze lingers; the process is repeated countless times. In this unspecialised way, what she sees and draws appears to us in some form. 


 Now let us look at her latest work, “Three Shapes”. It is landscapes of bushes, snow, and rocks drawn in different locations. Objects that do not seem to be connected to each other are gathered in one place. What are we looking at in front of the works? The bushes are drawn with multiple lines, giving them a colourful appearance. Up to this point, our eyes works without a hitch. Snow is depicted as piled up on trees. It covers the top of the tree in its complete form and shows each other simultaneously, but it also appears in a mixed form, sometimes without distinguishing whether it is snow, leaves, or rocks. Some rocks rise upwards, while others are held down by gravity. Others are simply separated by the interweaving of the pieces, while some stand out as individual chunks, seemingly temporarily leaning on each other's presence. They are all made up of combinations of shapes she finds while looking at a specific landscape. Most of the works are made up of lines, with brushstrokes that move horizontally and vertically, some of which represent external boundaries, emphasising the shapes she creates. Therefore, our gaze moves in a straight line, following the movements and lines of the brushstrokes that form the whole and individual shapes. It is probably because the landscape she saw was a natural response to the linear shapes of trees and rocks, which differed from the previous curvilinear forms of plants. However, is it essential to know whether it is a bush, snow, or rock to appreciate the picture? Instead, the present work seems to require eye contact between the artist and the spectator, which follows the shapes she sees and draws and makes possible the shapes and expressions that emerge rather than the perception of specific objects. Let us look at the shapes for the eye contact. The shapes she draws touch each other's boundaries, overlap and intertwine, extend vertically or diagonally, or lie horizontally. It allows objects with entirely different properties and shapes to appear both complex and straightforward, three-dimensional and flat. As the work progresses, they penetrate and intersect each other, becoming a landscape of mutual resemblance, with snowy trees becoming rocky mountains, rocky mountains becoming forests, and forests becoming trees again. 


 Then, how do we observe the shapes that appear in these works? The clue can be found in the artist's experience that the landscape she painted in a new place felt like the same place as a drawing she had already done elsewhere. Rather than an error of perception, these experiences reveal that certain unique places are no longer critical to the artist. Thus, what is rather emphasised in her recent work is the temporality of her drawing, which is achieved by repeatedly building up. Experiencing and discovering something, like the drawings she consistently makes in various ways, is a complex process of momentary contact and disappearance, of becoming aware of certain boundaries and gaps. However, the act of drawing repeatedly is also a natural process in which a shape is captured in the invisible passage of time in which it is drawn. For the artist, seeing is when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come into contact on the surface of an object. Of course, this process and time of observation can be thought of as a search for the abyssal nature of the object, but what she sees through her work is only the object's outward appearance as it is discovered through her eyes. As in her work, each of these beings has a separate and independent appearance, but they are also interconnected and appear as one. These shapes could be seen as the basic structure of the world as a whole but also as a horizontal manifestation of its independent existence. What makes this possible is the moment of contact with the shapes to see and draw. Thus, her paintings begin as one shape, a still object transferred from the natural landscape as seen by the artist, and subsequently appear in different shapes at different times as the artist's gaze becomes newly agitated again. As a result, as mentioned earlier, there is no completion in the process of creating her work. So, the shapes he draws do not exist yesterday, today, or tomorrow. It is not the sequential time of past, present, and future but the picture itself that is seen and transformed by the eye, forming a new time. In the end, this temporality is the result of contact between the unique and the special to us, the immediate and the relayed, the on-the-spot and the distant. From this point of view, the shapes she finds in natural objects are merely accidental surfaces, so the artist's repetitive act of drawing, which inevitably creates cracks repeatedly, becomes a natural work process for her. Therefore, to see the shapes in her work would be to connect the artist's time with our own to resonate with them. 


 Now, let us go back to the beginning of the essay and complete the story of “Seeing and Drawing.” In “Three Shapes”, Eom Yujeong draws from her observations of natural landscapes but does not rely solely on their transcendent dimensions and empirical sensations. Instead, she naturally moves out of the space of the landscape and focuses on the time she spends looking at it, opening up a new window to perceive the world. We look at an object with our eyes and try to observe it thoroughly; however, we still cannot get into and stay outside it. In this way, the essence of the form the artist sees does not reside within it but outside of it, in contact with our eyes. Therefore, by looking at the shapes of nature as they are and accepting herself as part of the time she draws them, she is not constrained by a particular shape but rather seeks to break free from it. And to this end, she simply follows the shapes that countlessly appear from time to time, steadily looking over and over again at the shapes of a world which is harmonious yet full of ambiguity and chaos. Thus, the shapes that the artist discovers through her method of working, an endless temporal cycle in which she reserves the ending, are objects that appear only after the time of this process. We can feel their entire presence through each expression that reveals them. For her, “seeing and drawing” is not a means of beautifully representing or accurately depicting an object but rather her performative act of perceiving the abstract sensations we experience in our world. 


Text by Seung Oh Shin 

Translation by Kieun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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